
COC 7th fanmade scenario

Written by 수연
KPC 유진 리 PC 유상흠
─────── ❅ ───────
어느 날, 한 미고는 인간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지식으로 시간 축의 좌표를 살핍니다.
그리곤 최근 그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두 대상을 관측해요.
그러니까 이건, 어느 시간선에서는 있었을 법한…
그가 찾은 다른 측면의 이야기.

.
.
.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유진과 상흠은 새하얗게 얼어있는 바닥을 딛고 섭니다.
시작부터 과격하지만,
맞은 편에는 63 마리의 크리쳐가 버티고 있습니다.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안부를 묻고 넘어갈까요.
AOC를 떠나 안전지대 밖으로 도주한지도…
벌써 68일이네요.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AOC에 몸담고 있을 때만큼은 아니겠지만...

종종 이런 식으로 크리쳐를 처리했었죠.

(의외라는 듯 눈을 깜박이다가,)
마침 탄환은 많이 남아있네요.

얼마 전, 처리했던 추적자의 주머니를 털길 잘했어요.


두 사람 앞을 가로막은 금속형 크리쳐, 63마리.
하지만 역시 좀 많네요,
크리쳐여도 밥 먹고 간식도 먹고 잠 잘 시간도 필요하니까,
사격 판정 후에는 4D12를 굴립시다.
◈ 유상흠의 차례.

어려울 것 없습니다!
유진과 상흠이 내내 해오던 일인 걸요.
최강의 인류, 최강의 크리쳐에게는 숨을 쉬는 것보다 쉬운 난도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여유만만인 태도인 거겠죠.

뭐, 뭐~ 그렇지만 양보해준다면 잘 받아가겠지만? (씨익 웃으며 손에 들린 라이플을 한바퀴 크게 돌리곤, 곧바로 크리쳐를 향해 트리거를 당깁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16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남은 크리쳐는 43마리,
총알의 궤도에 따라 깔끔하게 쓸려나갑니다.
◈ 유진 리의 차례.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78 |
| 판정결과: | 실패 |

2
기괴한 소리를 내는 크리쳐가, 더 가까운 상흠에게로 날카로운 금속을 뻗어옵니다. 3



◈ 다시, 상흠의 차례.



(말은 그렇게 하지만 어느정도 유진의 말에 수긍은 하고 있어요. 혼자 얘네들을 다 잡는 이 상황이 재밌긴 해요. 곧바로 총구를 크리쳐를 향해 겨눕니다.)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28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남은 크리쳐는 29마리.
유상흠 혼자서 처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도 되지 않습니다.
뭐, 당연하겠죠.
우지끈, 와장창, 뚝.
그리고 쿠당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금속들이 나무를 긁고 땅을 파헤치며
산산이 조각나 천지에 뿌려진 별이 됩니다.
고통도 통증도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우는 대신 윤활유 따위를 흘리며 바닥을 더럽힐 뿐입니다.

입으로 그럴 시간에 총이나 들지....
평소와 별다른 바 없는 일상이긴 합니다.
그러나…
어라?
생존 크리쳐가 과반수 미만으로 떨어져도 그것들은 도망가지 않습니다.

끼익, 끼익, 끼이이익.
낡은 경첩이 흔들리는, 불길한 소리만 잿빛 하늘을 긁어댑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상함을 감지하는 순간.
부서졌던 기계가 다시금 재생합니다.
당신과 유진이... 아니, 당신 혼자서 분명히 핵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체를 되찾은 것들은 아까와 똑같이 날카롭고 흉흉한 금속 테두리를 빛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핵을 파괴하면 크리쳐는 사망한다.
이토록 확실한 대전제가 무너지다니!
그 사이 크리쳐들이 진화라도 한 건가요?
아니면 솜씨가 엉망진창으로 퇴화한 건가요?

불길한 광경을 목격한 두 사람, 이성 판정(0/1).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22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 기준치: | 60/30/12 |
| 굴림: | 61 |
| 판정결과: | 실패 |


매끄러운 원기둥과 원뿔,
구로 이루어진 금속형 크리쳐는 날카로운 가시를 표면에 두르고 있습니다.
수은처럼 자유자재로 형태를 변화하면서요.
불규칙하고 정형화된 모양새 사이, 핵은 분명히 새파랗게 빛나고 있습니다.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진이 쏘면 뭔가 다른가 싶어서 크리쳐들을 다시 살펴보긴 해요)

쾅!
폭탄이 터지는 듯 요란한 굉음과 함께 크리쳐가 나가떨어집니다.
탄환은 확실히 크리쳐의 핵에 직격합니다.
부서진 파편 사이로...
◈ 관찰력 판정.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핵의 생김새가 어딘가 이상합니다.
여태 당신들이 알던 것과 달리
긴 바늘과 둥근 태엽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시계처럼 보이는 것이 그 자리를 꿰차고 있어요.
일전의 핵은 하나의 구로 이루어져 있어 바로 파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정교한 부품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서...
파괴하더라도 한 번에 조각조각 박살 내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당신의 시선과 같은 쪽을 보면서 중얼거립니다.)

총을 쏘면, 확실히 조금 더 조각나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총알 낭비가 너무 심합니다.
가로챈 후 박살내 모든 부품을 흩어두면… 핵으로써 다시 기능하지 못할지도.
개체에 따라 월등히 빠른 예도 있으니 여유롭진 않겠으나…
당신이 누구인가요, 최강의 크리쳐.
유진은 뒤에서 당신을 엄호하겠다는 눈짓을 보내고,
개체에 따라 월등히 빠른 예고 뭐고,
그 모든 크리쳐를 뛰어넘어서 가장 빠른 것이 당연한… ‘최강의 크리쳐’인 당신이 나설 차례입니다.
이때입니다, 달려서 저 핵들을 가로챌까요.



...손으로 하죠?
내가 엄호할 테니까.
(아까와는 다르게 조금 진지해진 상태로 자세를 잡습니다. 당신이 핵을 가로채올 때까지, 재생한 크리쳐들이 방해하는 걸 허용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


◈ 민첩 판정!


| 기준치: | 99/49/19 |
| 굴림: | 15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3분? 오히려 웃음이 나왔을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속도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립니다.
여유로울 지경이라고요.
뛰어온 경로를 따라 발자국이 남고,
흰 눈은 진흙과 오일이 섞여 온통 더러운 색으로 물듭니다.
그리고 숨을 몰아쉬며 최강의 크리쳐!
유상흠이 핵을 손에 쥐고 박살 내는 순간!
긴 이명이 들리고,
째깍,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째깍,

째깍,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째깍,
눈앞이 핑 돌며......
딸깍.
불 끈 거 누구야?!
.
.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유상흠은 눈밭에서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심장은 여전히 정신없이 쿵쾅쿵쾅 날뛰고,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토해낸 것은 다름 아닌...... 시계입니다.
무슨....?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파랗게 빛나는 점액질과 복잡다단한 태엽들.
...아까 본 크리쳐의 핵과 똑같이 생겼군요.
작동은 하지 않습니다.

더 나오는 것은 없겠네요.
다만 구역질이 밀려듭니다.
불쾌한 기분....

그러고 보면....
조금 몸이 무겁습니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에 문제는 없습니다만...
추위가 깊게 스며듭니다.

...이상하네. 걔가 날 이렇게 두고 갈리가 없는데.
여기는....
.....
어디지?
꽤 익숙한 광경이지만 어딘가 다릅니다.
유진도 보이지 않고요.
주변을 확인한다면 온통 눈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나무 한 그루는커녕
시야를 들고, 들어도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전부입니다.
아까 그곳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진 거죠?
바람의 냄새가 전혀 다릅니다.
더 건조하고 차가운....
설마, 뭐가 잘못 됐나.

유진이.... 당신을 두고 갈 사람은 아닌데 말이에요.
눈밭에 파묻힌 걸까,
최악의 상황이라면 폭발에 휘말려 흩어지고 만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뒤늦게 문득 자신의 복장을 확인한다면…
?
여태 입고 있던 옷은 어쩌고 이런 차림인지 모르겠습니다.
낡은 스웨터와 패딩.
어쩐지 낯익은 복장이기도 한데.......
◈ 건강 판정.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44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이상하네요.
귀는 먹먹하고 심장은 쿵쿵 뛰는 데다 머리는 조금 어지럽습니다.
속은 여전히 메슥거리고요.
추위가 얇은 옷매무새 사이로 스며들어서 오한과 소름이 오스스 돋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배까지 고픕니다.
◈ 체력 1점 차감.

주머니 안은 절망적일 만큼 텅 비어있습니다.
전에 입고 있던 옷이라면 이렇게 춥진 않았을텐데.
옷차림 때문에, 그래서일까요? 이렇게 추위를 느껴본 적은 오랜만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습니다.
얼굴이 눈에 닿아 시려오네요.

...AOC의 요원이 된 후 강도 높은 훈련을 거치며
이런 감각에는 무척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심지어 최강의 크리쳐가 되어버린 후로는 더더욱이요.
조금 이상함을 느껴도,
딱히 짐작 가는 구석은 없습니다.
음, 일단 유진을 찾아야 할 것 같은데요. 만사가 귀찮긴 해도.

눈 속은 아닌가.....
하늘에서는 여느 때와 같은 눈송이가 떨어집니다.
당신의 뺨과 머리칼에 닿으면, 조금 오래 머물다가 점차 녹아버립니다.

(혼자 그리 중얼대고 나면,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에 뭍은 눈을 툭툭 털어버려요.) 아, 이렇게 혼자인 건 너무 오랜만인데...
(이런 눈밭에 저 홀로... 이렇게 중얼대도 받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아, 벌써 재미없어. 배도 고프고.


뭐, 대충... 그정도 이름이면 됐지. (그리곤 주위를 다시 살펴봐요.) 어디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라던가.. 뭐 없나? 진짜 아무것도 없나?
◈ 관찰력 판정.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87 |
| 판정결과: | 실패 |
윌슨과 함께 좀 더 걸어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밭을 걷다보면...

저 아래에 얼어붙은 호수가 보이네요.
너도 보여? 윌슨?
당연히 윌슨은 대답이 없고,
매서운 바람소리만 귓가를 때립니다.
모자라도 쓰는게 좋을까요.
걸을수록 눈은 높이도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집니다.
그것들을 헤치고 걷자니 유난히 사지가 무겁고 축축 늘어지네요.

(그나저나, 나 크리쳐일텐데? 나 크리쳐일텐데? 겨우 이정도 걸었다고 힘들어지나? 늘어지는 몸을 무시하고, 크리쳐의 긍지를 걸고 힘차게 걸어가봐요.)
크리쳐가, 겨우 이 정도로...?
왜 힘들지?
그러나, 바지와 운동화도 눈에 축축하게 젖어버려서 불편합니다.
경사가 있는 눈길.
균형을 잡기가 어려워,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려가면....
얼어붙은 호수의 테두리에 닿습니다.
아, 표면은 단단하게 얼어서 물을 마실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호수 건너편 저 멀리에 검은 숲이 펼쳐져 있습니다.
... 가로질러 들어갈까요? 아니면 에둘러 돌아가는 것이 나을까요.
이 눈밭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디로든 걷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직진!
단단히 얼어있는 호수를 가로지릅니다.
호수의 표면은 얼음 특유의 결이 생생합니다.
꽤 깊게 언 모양이죠, 빠질 걱정은 없겠네요.
그리고 유상흠은,

호수 아래를 보다가.... 얼음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봅니다.
상당히 앳된 얼굴이에요.
…?

지금의 당신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콜록!
생각을 방해하는 것은 낯익은 기침 소리입니다.
뒤를 돌아보면 내려오던 반대 방향으로 둥글게 솟은 눈 무덤이 있습니다.
딱 사람 하나를 묻을 크기네요.

뭐야, 누구 살아있으면 말해봐요! (얼음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어려보였던 건... 일단 나중에 다시 알아보는 걸로 하고, 곧바로 무덤쪽으로 향해봐요.)
그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눈 무덤을 헤집으면,
그 안에 쓰러져 있던 것은....
뺨이 차갑게 얼어버린 유진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진이지만 유진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앳된 얼굴.
그리고...... 익숙한 군복.

AOC의 군복을 입고 있는 유진은,
대 크리쳐용 살상 무기를 쥔 채 눈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미약하게나마 숨은 붙어 있군요.

그런 불만이 먼저 자리하면,
전직 AOC의 군인인 당신은, 그 다음 순간 깨닫습니다.
아, 이건 현재 보급되는 무기가 아닙니다.
몸체에 쓰인 모델 넘버는 A-O19-C1015.
......약 4년 전에 사용하던 구형입니다.
앳된 얼굴의 두 사람은 아무리 봐도 조금 전과는 다르고,
무기의 연식은 분명히 4년 전의 것입니다.
......4년 전으로 타임리프한 유상흠,
✷ 이성 판정(0/1) ✷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72 |
| 판정결과: | 실패 |

4년 전 일이기에 기억이 완전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잊겠어요.
이유진과의 첫 만남이기도 할뿐더러 뼈에 사무치는 추위였는걸요.
지금이 4년 전임을 인지하자마자,
기억을 가다듬을 필요도 없이 이다음의 일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커다란 동굴이 있습니다.
겨울에 먹을거리가 모자라 사냥을 나오게 되면 사용하던 쉼터이기도 했었죠.
그때 분명히, 쓰러진 유진을 이고 져서 그 동굴로 향했습니다.
추위를 피하고 불을 때고.......
그렇게 당신은 간신히 유진을 살리고,
다른 AOC 요원들과 합류해서 그들이 Z시의 피난민을 보호, 이송했었습니다.
X시에 무사히 도착하며 터지던 안도의 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마, 어쩌면... 당신이 AOC에 입대하겠다고 조금이라도 마음먹은 계기였을 수도 있겠죠.
유진은, 지금 얼마나 오랫동안 이 눈 속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던 걸까요?
아무리 흔들고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시체처럼 차갑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제 어떻게 할까요?
왜냐하면 지금의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AOC를 동경할 수도 있었던, 4년 전의 순진한 이가 아닙니다.
얼음송곳 같은 눈발이 흩날리고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바닥에 널브러진 몸은 당신이 구하지 않는다면 얼어붙은 설원에 버려진 채 시체가 되겠지요.
최강의 인류라는 명성이 애석하게도, 무덤 하나 없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최강의 크리쳐니 뭐니 하는 끔찍한 실험의 희생자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동굴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AOC가 떠올라요. 그러자 표정이 찡그려집니다. 걔네한테 얘를 넘겨줄 이유가 있나? 괜히 이유진 볼 쿡쿡 더 찔러봤다가...)
뺨을 찔러도, 차갑고 뻣뻣합니다.
....여전히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아요.
눈을 뜨게 하려면 우선 몸을 데우게 하는 것이 좋겠죠, 이 추위에 얼마나 방치된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은 숲은 나무들로 빽빽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쉬게 할 만한 곳은... 떠오르지 않네요.
그 동굴 외에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살려낸 유진이 AOC와 합류하는 것은 이보다 한참 뒤였죠.
동굴에서 정신이 들고, 함께 Z시로 이동하지 않았던가요.

...근데 일어나면, 킁. 뭐라고 말하지? (이 눈밭에 계속해서 있는건 자신에게도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빠르게 등 뒤에 유진을 업어요. 아니, 업을까? 아니면...)


유진을 업고 기억에 남아있는 곳으로 걷습니다.
아, 이제야 힘든 이유를 알겠습니다.
4년 전의 당신은 크리쳐도, AOC도 아닌… 그저 민간인이었을 테니까.
바람이 스칠 때마다 피부가 갈라지는 것처럼 고통스럽습니다.
아직 최강의 인류도, 최강의 크리쳐도 되지 못한 신체는 연약하기 짝이 없군요.
들춰 맨 유진의 무게가 자꾸만 무릎을 꺾습니다.
◈ 건강 판정.

| 기준치: | 80/40/16 |
| 굴림: | 2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가만히만 있어도 몸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니까요,
확실히 크리쳐일 때와는 다릅니다.

...기억을 따라 걸어도, 어쩐지 동굴은 나오지 않습니다.
분명 그때는 얼마 걷지 않았던 것 같은데. 추억의 미화일까요?
정신을 잃은 이유진…. 갈수록 무겁고 걸리적거리기만 합니다.
아, 그냥 버리고 가고 싶다.......
당신의 힘듦이 한계치에 다다랐을 때,
드디어 커다란 동굴의 입구가 보입니다.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을 거예요.
바닥이 좀 딱딱하겠지만 설원에 눕는 것보단 훨씬 호사스럽겠죠.

안으로 들어가면, 생각보다 어둑하고 서늘합니다.
벽에는 꺼진 횃불이 걸려 있고,
짐승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높은 곳에 선반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모포, 난로와 비상식량 정도는 있었던 것 같은데요.

기름을 넣어 불을 때는 구식 간이 난로는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기름은 들어있지 않네요.
◈ 행운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3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운이 좋네요, 기름이 넉넉히 남아있습니다.
선반 위에서 발견했겠네요.

타닥, 타닥...
불이 들어오면, 아까보단 훨씬 낫습니다.

유진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신이 옮기는 대로 옮겨지겠네요.
몸은 꽁꽁 얼어 체온이 극단적으로 낮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낡고 얇은 모포 몇 장을 찾습니다.
케케묵은 냄새도 조금 납니다만, 이게 어딘가요.
높은 선반을 조금 더 뒤져보면, 비상식량도 제법 많이 있네요.
봉지 라면과 동결 건조 수프, 하이라이스, 육포와 초콜릿 바 조금이 남아있습니다.
낡고 더러운 양은 냄비도 하나 굴러다니고요.


눈으로 먼지를 씻어내고,
깨끗한 눈도 그 안에 퍼와서, 물 대신으로 쓰면 되겠죠.
그걸로 라면이나 수프를 끓일 수 있을테니까요.

횃불에도 불을 붙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반에는 성냥 몇 개도 남아있으니까,
마른 횃불에는 쉽게 불이 붙겠네요.

횃불에도 불이 들어오면, 점차 내부가 밝아옵니다.
동굴이 눈보라를 어느정도 막아주고, 난로를 켠 덕에 추위도 한결 가십니다.
물론 아직은 몸이 으슬으슬 떨리긴 하지만......
배까지 채운다면 더 나아지겠죠.


라면은... 6 개가 남아있네요.


좁은 동굴 내부에는 음식 냄새가 자욱하게 퍼집니다.
이런 때에 라면 냄새는…. 끝내주겠죠.
끝내주는 냄새를 맡으며....
유진이 눈을 뜨기 전에, 잠시 상황을 정리해볼까요.
당신은 분명히 숲에서 크리쳐와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핵을 부숴도 되살아나는 변종이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됐죠.
핵의 부품을 흩어 놓기 위해 손에 쥐는 순간......
요란한 초침 소리와 함께 암전.
그다음은 4년 전의 어느 날, 지금.
핵을 쥐는 순간 신체 내부에서 격렬한 반응이 일었던 것으로 보아,
크리쳐 간의 무언가가 공명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그리고 당신이 토해낸 시계…
윌슨은...... 크리쳐의 핵이겠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윌슨의 바늘은 어디 있는 걸까요? 아직 뱃속에?
마저 토해내서, 합체해야 돌아갈 수 있다거나?
전혀 모르겠네요.
보글보글. 타닥타닥. 깜빡깜빡.
눈보라와 어울리지 않는 조용하고 얌전한 효과음이 동굴 안을 채웁니다.
잠깐.
무언가 이상한 의태어가 섞이지 않았나요?
깜빡깜빡?

눈을 뜬 유진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여러 가지 의문 중 하나의 답을 얻습니다.
이유진은 확실히 4년 전의 사람입니다, 분명해요.
전혀 모르는 눈으로,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당신처럼, 모습만 4년 전의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죠.





(그리곤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여요) 아, 일행은 없어요. 저도 어쩌다보니 혼자 떨어져서 말이죠.

네? 하지만 여기, 도시랑은 꽤 떨어져 있을 텐데요.
그, 이 근처에 사시나요? 사람은 살지 않은 것 같았는데... ... (정말로 혼자서....? 뭐 하는 사람이야? 그러고 보면 이 동굴.... 난로도 있고.... 끓고 있는 음식에는 저절로 시선이 고정됩니다.)

... .... ....같이 먹어도 괜찮을까요. (냄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조용히 뱉습니다.)





다른 재료 없이 물만 넣고 끓인 동결 건조식품이란 그저 그런 푸석푸석한 맛입니다만,
눈이 쌓인 풍경을 두고 4년 전의 어느 날에서 먹노라면 참 특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 체력 1D3 회복.


1




.....감사합니다,
당신은... 제가 책임지고 데려다 드릴게요.



(최강의 인류라고 불리지만, 뭐, 그런 건 딱히 설명하진 않습니다.) 음.... 그러니까, 안심하세요.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눈밭에 쓰러졌던 사람이 하는 말이라 신뢰도가 없으실 것 같지만... 하하.


뭐, AOC 대원도 쓰러지는 날이 있는 거 아니겠어요? 믿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요.

당신은 앞으로도 4년 전의 일을 하나씩 떠올리게 될겁니다.
왜 바로 기억해 내지 못할까, 그것은 아마 4년 전은 꽤 오래 지났고,
C.V에 중독되면서 몇 가지 기억이 희미해졌기 때문일 거예요.
기억을 되찾는 방법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당신은 계속해서 기시감을 느끼다가, 어떤 기억들을 꼭 필요한 순간에 떠올립니다.
미래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의 사소한 일들은...
기억을 복기하지 않고 제멋대로 채워도 괜찮을 겁니다.
그야… 4년 전 오늘, 뭘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
.
.
최강의 인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유진의 회복력은 가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꽁꽁 얼어서 괴사를 걱정해야 했던 피부는 금세 핏기가 돌고
뻣뻣하던 손끝은 부드럽게 짐을 움켜쥡니다.
허기를 대충 해결하자마자 유진은 동굴 가에 섭니다.
바깥을 살피면 인기척은 들리지 않고,
블리자드는 지나갔지만 바람은 여전히 흉흉해서,
눈이 내리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네요.


(뭐어~ 이름이 이유진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상황을 보던 유진이 먼저 앞장섭니다.
그리고… '
그의 입장에서 지금 당신은 민간인이나 다름없으므로,
이해는 하겠다마는.
평소보다 너무 과보호하는 듯이 느껴지겠네요...
앞서서도 뒤를 돌아보며 당신의 걸음을 계속 주시하다가,
결국은 손을 내밉니다.





음, 그렇게 팍팍 내딛다가 아래가 뻥 뚫려있을 수도 있다는 얘긴데요.
(뭐.... 여긴 아직 평지니까, 그럴 걱정은 없겠지만서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같이 지내면서 유진의 손을 이렇게 잡고 이동할 일은 잘 없었기 때문에... 괜히 시선이 딴 곳을 향해요.)

눈보라가 휩쓸고 지나간 것에 더해, 온통 평평한 설원이라 길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힘겹게 헤치고,
손을 잡은 채로 간간이 대화도 나누며 쉬지 않고 걸어요.
아니, 헤매는 쪽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X시는 안전할 겁니다.
(Z시의 사람들은 거주하던 곳을 버리고 떠나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 부분을 신경 쓰고 말합니다.)

(이런 거... 4년 뒤의 이유진한테 묻기에는 AOC 관련 이야기라 꺼낸 적 없는데... 4년 전의 이유진이라면 그래도 물어볼 만 하겠죠.)

아, 그거 재밌는 주제네요. 흠.....
(이 역시 자신이 꺼내는 스몰 토킹에 대한, 당신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무래도 보람찬 일이긴 하죠? 사람을 구하는 거... 음, 입대할 때만 해도 그런 숭고한 마음가짐 같은 건 없었는데 말입니다... 하하, 여기서니까 말하는 거예요.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군인들이라고 다 그런 직업 정신이 있는 건 아니니까. (장난처럼 조금 웃습니다. 흰 눈밭에 조금 멀리 시선을 두다가, )
사실.... 지금도 뭘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오늘 상흠 씨를 무사히 Z시까지 데려가게 되면, 네, 아무래도 이런 일을 위해 여기 들어온 거라고... AOC가 되길 잘 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저를 살린 건 당신이니까, 저도 그럴 수 있길 바라야죠. 도움이 되겠습니다. (가볍게 후후, 하고 웃었다가, 주변의 내려온 나무가지들을 손으로 치워봅니다.) 아, 그나저나 방향을 전혀 모르겠네....

(그리고 이런 작고 작은 일들이 이 녀석을 계속 AOC에 붙어있게 만들었던 거겠지 싶어... 괜히 짜증이 납니다. 이런 식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고민하는 녀석도... 잘 없는데...)
(괜히 유진이 다리를 툭툭 차요.) ...AOC 너무 믿지 말라고요. 사람 구하는 거에 너무 목매지도 말고. 사람도 좀 의심할 줄 알고.

이때의 유진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 채로, AOC의 정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유진을 잘 아는 당신의 눈에 다 보일 정도로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당신은,
◈ 관찰력 판정.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34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파묻힌 나뭇가지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자연스럽게 꺾여있는 것이 당신의 눈에 들어옵니다.
사람의 손이 닿을 법한 위치의 나뭇가지 하나만 왼쪽으로 꺾여있네요.
검은 작대기가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그리곤 흐트려버렸던 머리를 다시 정리할 때 쯤이면, 이상한 나뭇가지를 발견합니다. 주제도 돌릴겸 언급해요.) ...것보다, 저 나뭇가지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아ㅡ
당신의 말을 따라 그쪽을 보던 유진은 무척 반가운 눈치입니다.

맞게 왔네요, 서쪽으로 조금 더 걸으면 될 것 같습니다.
멀리 떨어진 건 아니라 다행이네....
"죽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했을 줄 알았는데."
동료들이 믿고 기다리고 있다는 건 그에게 꽤 반가운 일이겠죠.

C.V를 이식받기 전의 유진은 어떤 동료와 어떻게 지냈는지,
4년 전의 당신도, 4년 후의 당신도 알지 못합니다.
그때는 유상흠이 아닌 다른 파트너가 있었을까요.
남겨진 표시를 따라 걷다 보면, 높은 절벽이 나옵니다.
길이랄 것이 없는 막다른 곳이네요.

(당신의 표정이 구겨진 것도 알지 못하고, 남겨진 표시를 보면 드디어 실마리를 하나 찾은 듯이 곧장 그쪽으로 함께 걸어가겠네요.)


아, 아뇨. 상흠 씨가 잘 찾아주셨어요, 확실합니다. (당신의 말이 들리면 웃으면서 절벽을 가리킵니다.)
절벽을 살펴본다면 일정한 간격으로 찍힌, 눈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선발 부대가 어떤 길을 가로질러 갔는지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AOC, 최강의 인류 집단에겐 막다른 곳조차 또 다른 길이 되는 법입니다.
절벽을 오르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죠.
하지만 문제라면......
지금의 유상흠은, 최강의 인류도, 최강의 크리쳐도 아니네요.
잠깐 절벽을 살피던 유진은 익숙하게 품에서 벨트를 꺼냅니다.
버클을 열고 길게 늘인 후...... 당신을 묶네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가,)
(다시 벨트를 꽉 조입니다.)

AOC, 나올 생각은 없냐고요. (아, 이쯤되면 진짜 오지랖이 맞긴합니다. 지금의 이유진은 모르는 사람이고,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은 성격에 안맞는 일이란 걸 알아차려요.)







(아무래도 자신이 죽어가던 걸 구해준 사람 앞이니까 더, 신경 쓰이겠어요... 이름에 걸맞게 끝내주게 구해주거나 한 것도 아니고 말이죠. )
그러면서 벨트를 다 장착하고 나면,
상흠은 유진의 등에 바짝 붙은 모양새가 됩니다.
새끼 원숭이...... 혹은 새끼 거북이......
조금 그런 감상이 들었을지도 몰라요.
이 시절의 유진 리는…. 최강의 인류지만 최강의 크리처는 아닙니다.
괜찮을까, 그런 의문은…
솔직히, 안 들었나요?
그런 걱정보다는, 이 자세가 낯설 뿐일지도 모릅니다.
최강의 인류이자 최강의 크리쳐였던 당신에게는 말이에요.

(자세 거슬려... 이유진도 거슬리고, AOC도 거슬리고 이 앞에 가있다는 이유진의 동료들도 거슬립니다)
당신을 짐짝처럼 매단 유진은 거침없이 절벽을 오르기 시작합니다.
크랙에 손가락을 걸고 훌쩍 뛰어오르는가 하면,
책의 펼쳐진 면처럼 매끈한 코너를 온전히 팔 힘으로 딛고 기어오릅니다.


뒤에 매달린 상흠은…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못해먹겠네............
...괜찮은가요? 멀미는 없나요?
점점 지면이 멀어집니다.

기분이 나쁜 것 빼고는, 멀쩡합니다.

(...기분이 엄청 안좋습니다. 얼굴에 그게 팍팍 티가나요.)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면….
꽤 높게 올라왔네요.
이런 곳에서 떨어지면 즉사,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예전에는 이보다 높은 곳에서도 훌쩍 뛰어내릴 수 있었는데요.
크리쳐가 되기 전에도, 유진이 받아주었으니까요.
가령 헬기 위, 라던가.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2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57 |
| 판정결과: | 실패 |
덜컹,
유진이 붙잡았던 크랙이 갈라지면서,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집니다.

미안해요, 놀랐지.



(남아있는건... 그나마 어중간하게 남아있는 존대뿐...)

(하지만 입을 열면 체력이 더 소모될 뿐이니까, 그 대답은 하지 않았겠네요.)
(아까 눈밭에서와 다르게 말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차오르는 숨소리만 추운 공기에 입김을 만들어내고,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오릅니다.)


(......음? 아, 이건.... 내가 유명해서겠구나, 그렇게 생각했겠어요.)


..........예?
(계속 속으로만 생각하며 넘기다가, 결국 저 말에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맙니다.)


그러니까... AOC 같은덴 그냥 나와버려. 물론 내가 AOC에 들어가는 건 몇년 뒤의 일이고... 그래서 너랑 못만나는 건 좀 아쉽긴 한데.
것뿐이니까.

| 기준치: | 50/25/10 |
| 굴림: | 6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탁!)


칼날 같은 바람이 머리카락을 헤집고, 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면….
드디어 정상입니다.

평평한 땅에 몸을 올린 유진이, 당신을 풀어주지도 않고 드러눕습니다.

샌드위치가 된 채로 호흡을 가다듬으면.......
자연히 시야에는 하늘이 들어옵니다.

회색 하늘, 흰색 눈송이.
4년 전이고 4년 후이고 조금도 다르지 않은 풍경.
그때 보았던 하늘도 정말로 이랬던가.
돌아갈 수 있을까, 조금쯤 그리운 느낌이 듭니다.

샌드위치인 채로 줄을 풀어봅니다.
그래요, 분명히 이랬던 때가 있었어요.
우연히 AOC 대원이던 유진을 구하고,
단둘이 한 겨울을 걷고, 절벽을 올랐던 때가.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날 처음 만났던 유진은 이런 얼굴로 웃고 있었는데.
당신의 계기는 무엇이었던가요,
유상흠, 당신이 AOC가 되려고 마음 먹었을 때...
지금의 일이 한 조각의 이유 정도는 되어주었을지도 모릅니다.
벨트를 풀고, 숨을 조금 고르고 나면.
절벽 위도 눈투성이인 건 여전합니다.


지금의 유진에겐 당신이, 주어진 임무 그 자체인 것 같아요.

그가 누워있는 당신에게로 손을 뻗습니다.


아, 그랬죠.
지금의 당신은 크리쳐도, AOC 시절의 신체능력도 아니니까....
평소와 같은 힘으로 당겨봤자, 당신 앞의 이 사람은 끄덕도 안 하겠어요.

해가 지면, 저희 둘 다 얼어 죽을 수밖엔 없다고요.... 자아. (제대로 바닥에 세워줍니다.)



정말로 못믿겠으면 자세히 설명이라도 해줄까? 정확히 어떻게 벌어진 일이고, 누구 주도로 벌어지는건지?

여기서 오래 얘기할 시간은 없으니까,
정말로 위험하다니까요, 날씨도 좋지 않고, 해도 지게 되면....
달래는 투로 대답하네요.
지금의 유진의 눈에,
당신은 그저 민간인, 그뿐입니다.
4년 후의 유진이라면 이러지 않을텐데... 당신과 쌓아온 유대가 다르니까요.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 시점의 이유진이 처음 만난 사람의 '이런' 말을 들을 리가 없습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목이 빠질 정도로 켜켜이 쌓인 눈은 차고 단단합니다.
절벽 위쪽의 나뭇가지는 여전히 한 방향으로 꺾여있습니다.
두 사람이 그 간격을 따라 걸으면,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붑니다.
건조한 눈 냄새가 나요.
술렁거리는 공기는 꼭 짐승의 울음소리 같습니다.

눈보라의 조짐... 문득 유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눈보라가 올 거예요.



그렇다면 원래 하려던 대로 해. 딱히 날 위해서 그 계획을 바꿔달라는 말 같은거, 너한테 하고 싶진 않으니까.
(그리곤 유진이 가려고 했던 방향을 엄지로 가리켜봐요.) 저 쪽으로 가는거 맞지?

제 옆에서 떨어지면 안돼요.
휘잉,
얼마 안 있어,
유진이 말한 대로 거센 눈보라가 밀려오고 시계가 하얗게 물듭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온통 순백 일색이라 원근감이 사라집니다.
흰 세상에 오점처럼 남은 것은 이유진과 유상흠 뿐.
주위로 두르고 섰던 나무들이 갑자기 창살처럼 상흠의 주위를 둘러쌌다가,
손을 뻗으면 또 저 멀리 사라져버려 허공만 움켜쥡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한여름의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것을 믿을 수 없는 공간.
잠깐 눈보라에 시야가 막혀, 손을 놓았던 찰나..
눈을 깜빡이면 유진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을 놓치고 홀로 나아간 건가요?
아니면, 뒤에서 헤매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답답한 마음과, 답답한 상황.
눈보라를 가르며 나아가고 나아가도... 보이는 이가 없습니다.

와...나...(....사라질거면 사람 말이라도 들어주고, 사라지던지....그냥 지금 이 상황에 너무나도 허탈해집니다.)
(아무리 나아가도 사람이 안보이면 처음에 했던 것 처럼 그냥 바닥에 드러누워요. 당연히 눈 아래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지만 여러모로 피곤해져서 잠시 눕고싶어졌습니다.)
(그리고 눈 아래에 물어봐요) 이유진, 이유진... 있냐?
이 설원에 다시금 홀로 버려진 기분이 듭니다.
피곤한 것이 당연한 몸을 바닥에 눕히고,
목소리를 내보지만...
소리마저 먹히는 대자연의 백색은, 이토록 희고 흽니다.
혹시나 해서 귀를 기울여 봐도, 유진의 목소리는커녕
바람 소리만 먹먹하게 귀를 메웁니다.
만약 여기서 당신이 죽으면,
미래의 유상흠은 어떻게 되는 걸까.
4년 후의 그 시간들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대로 지워지는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무섭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당신은 똑똑하니까....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걸요.

인간의 나약한 몸은, 정말로 금방 죽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조난을 당했어요.

품에서 꺼내든 작은 윌슨은, 눈보라에 시야가 가려 어쩐지 성가실 만큼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크리쳐의 몸을 떠올리며 비교해 보면, 차이는 더 극심합니다.
.........

(이렇게 눈도 많이 오겠다. 아예 눈을 파고 들어갈 생각을 해요 토끼굴처럼. 그나마 체력이 있을때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을 때,

덥석 잡아오는 손이 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고 당신의 곁에 섰던 사람.
폭주와 죽음 후 깨어날 때마다 자리를 지키던 파트너.
당신이 그의 소생을 지켜보듯 그 또한 당신의 소생을 지켜보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몇 번이고 다시 만났던 그 얼굴...
비록 4년 전이라 조금 앳되지만요.

자신의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아서, 답답하고... 화가 나더라도...
의심할 여지 없이 안도감이 듭니다.

화이트아웃이에요, 안개가 가라앉으면 괜찮을 거예요. 떨어지지 않게 꽉 붙잡고 있어요, (꽉 붙들어 안아서, 조금만 떨어져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 대신 감각에 의존해 근처의 커다란 나무로 이동합니다.)

새하얀 시야를 앞에 두고 유일하게 새까만 나무.
빛이 들지 않아 거무죽죽한 뿌리 근처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이 상황.
하지만, 당신이 화를 내면 낼 수록...
지금의 유진에겐 당신이 이상하게밖에 보이지 않겠죠.
그래요,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막막한 기분이 눈안개처럼 밀려듭니다.
그저 가까이 붙어 앉거나 온기를 나누면서,
이 흰 시련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나무 기둥을 한 축으로,
눈을 파고 들어가 공간을 쌓으면서,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온기를 보존합니다.
안개가 가라앉고 시야가 트일 때까지.....
.
.
.
화이트아웃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붙어앉아있을 때는
세상이 전부 고요합니다.
서로가 아직 인간일 적의, 인간의 심장소리.

조심... ...도 하고요.

(묘한 얼굴로 벽에 기대고 있으면, 갑자기 옆사람이 하는 말에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봐요.) ...엥?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아마 이것이 최선이겠죠,
미래를 알지 못하는 지금의 그로써는.

(저렇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로 쳐다보는 이유진은 정말...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집니다. 괜히 머리를 긁적이곤, 고갤 돌려버려요) ...그러든가. 나도 이제 더 언급할 생각 없긴 하고.
그렇게 잠시 후에는 백시가 가라앉아,
하얀색 일색이던 시계의 원근감이 돌아옵니다.
반대편을 내려다보면 저 멀리 도시가 보입니다.
당신이 나고 자란 Z시.
이만큼이나 멀리 왔었던 거네요.
새삼스럽게 그 거리가 실감이 납니다.
나뭇가지를 꺾은 흔적은 더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 목적지가 이토록 선명하기 때문이겠죠.

다행히도 절벽을 다시 내려갈 필요는 없겠네요,
완만한 비탈길이 나타났거든요.



조난이 취미가 아니라, AOC가 싫은거라고. 보면 몰라?


그렇게 곧장 걸으면, 두 사람은 곧 Z시 외곽에 도착해요.
높이 쌓았던 바리게이트는 무너지고,
뼈대를 드러낸 건물의 잔해 사이로는 크리쳐가 돌아다닙니다.
유진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일 지도 모르겠어요.
탄환이 모자라서일지도,
아니면 민간인인 당신을 달고 무리할 수는 없으니 조심해야 하기 때문일지도.
외곽에서 17번 게이트로 향하는 길은 3갈래로 나뉩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
학교를 가로지르는 길,
그리고 놀이터를 가로지르는 길.


(딱 봐도 돌아다니는 것들이 수가 많아서, 운이 나쁘면... 조금 벅차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당신은 원하는 길을 골라도 되고,
지능 판정을 해볼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이떈... 학생이였으니까, 대충 학교를 가로지르는 쪽으로 많이 다녔던 것 같은데...?
(이렇게 말하면서 더 좋은 길이 있는지 한번 생각은 해봐요)
◈ 지능 판정.

| 기준치: | 90/45/18 |
| 굴림: | 6 |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아, 그랬었지.
크리쳐가 8차선 도로를 통해 유입된 탓에,
제일 먼저 출입 금지 구역으로 봉쇄되면서...
사람의 출입이 줄어들다 보니, 요즘엔 되려 크리쳐들마저 뜸해진 구역.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이 좋겠네요.
당신 또한, 설원으로 나올 때 이곳을 통했었겠죠.
Z시를 다시 밟으니 예전의 기억이 또렷이 살아납니다.

(그것보다... 주위를 둘러보다보니 조금씩 옛날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도 같아요. 바닥의 눈이 제 발에 밟히는 소리가 들리면 더더욱이요. 도로 방향을 가리켜보여요.) ...그런데, 크리쳐가 잘 안다닐 것 같은 방향을 찾는다면... 그건, 저쪽이네.

◈ 유상흠, 행운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19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도로를 가로지르는 길에는 크리쳐 하나 보이지 않아요.
훤히 드러난 곳이라 엄폐물이 없어,
조우했다간 크게 곤란했을 텐데......
다행입니다.
아니,
여기에 없는 크리쳐들은 이미 다른 Z시 곳곳에 바글거릴 테니
크게 다행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아스팔트 도로를 한참 걷다 보면...
◈ 다시, 행운 판정.

| 기준치: | 70/35/14 |
| 굴림: | 45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오, 제법 쓸만한 자동차를 발견합니다.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겠네요.

운전석에는 편리하게도 키가 꽂혀있네요,
운이 좋습니다.


시동도.... 오, 부드럽게 걸리네요.

두 사람이 차에 탑승합니다.
마주친 크리쳐는 없지만,
도로 주변에는 금속형 크리쳐의 잔해와 무너진 핵들이 눈에 띄고 있으니...
빠르게 벗어나는 쪽이 좋겠다고 판단되겠죠.

요즘 들어 새로운 게 등장해버려서... 좀 까다롭게 됐거든요. (운전대를 쥐고는 그런 얘기들을 하겠네요.)
내가 여기에 파견된 것도...




그 생체형들 때문에, 원래 이 구역 담당인 대원이 사망해버려서... ...
그러니까 위험하단 거예요, 설원은 겨우 지나왔지만.
도착할 때까지 안심하긴 이르단.... 자, 이거 찾아요? (굴러다니는 초코바 하나를 옆으로 던집니다.)

너가?
(이것도 꽤나 신선해서 초코바랑 이유진을 번갈아 쳐다봐요.)






금속형이었던 게 인간을 먹거나 관찰해서 형태를 바꿔서 진화한 쪽이 유력하다네요? 징그럽게.
그래요, 지금의 유진은 모를 수밖에 없죠.
남의 초코바를 뺏어먹는 사람이 누군지도,
생체형 크리쳐의 진실도.
도로를 빠져나와, 적당한 곳에 차를 댑니다.

....잠깐만.

(당장 AOC를 믿지 말라는 말에도 저렇게 거부감을 느끼니, 이번엔 먼저 말하지 않아요. 차에서 내리려고 하면, 의아한 얼굴로 물어요.) 뭔데?
유진이 검지를 제 입가에 가져다 보인 후에 가르키는 것은...
금속형 크리쳐 10마리.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됐는데, 번거롭게 됐네요.


유진은 차에서 조용히 내립니다.
당신과 거리를 벌린 후에 싸우려는 생각이겠죠,
무기도 없는 민간인을 상대로는 당연한 조치겠지만...
늘 옆에서 싸웠던 당신에게는 어색한 일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4년 전에는 이랬었죠.
유진과 크리쳐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익숙한 과정입니다.

깡ㅡ!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딱딱하게 마무리된 표면이 움푹 팹니다.
총기로 금속형 크리쳐를 야구공처럼 저 멀리 걷어낸 유진은,
망설임 없이 장전합니다.
총성이 터지는 동안은, 얼마나 천지가 시끄럽고 사위가 흔들리는지. 자동차 안인데도 말이에요.
속이 다 울렁거릴 지경입니다....
이때의 몸은 이렇게 약했던가요?


(정말로 맘편하게 있어요)
의자에 기대면 조금 나을지도.... 마치 관람하듯이 맘 편하게 그것을 보고 있으면,
◈ 듣기 판정.

| 기준치: | 20/10/4 |
| 굴림: | 32 |
| 판정결과: | 실패 |
목덜미가 어쩐지 따뜻합니다.
이상하다, 이런 날씨에?
툭.
끈적끈적한 것이 어깨에 닿아 흘러내립니다.
악취가 치솟습니다.
그르륵, 그륵.
아, 그제야 당신의 등 너머로 소리가 들려요.
총성에 집중하느라 채 몰랐던가,
트렁크를 타고 넘어온 금속형 크리쳐가.
그러니까, 꼭, ‘그어그어’하고 우는 것 같네요.
클리셰 SF 세계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크리쳐의 울음소리처럼......
유진이 상대하고 있던 10마리, 그보다 더 있었던 거군요.
아니.... 뒤를 돌아보면, 이건 생체형이네요.
입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구멍을 커다랗게 벌린 구체는,
자아를 잃고, 허기에 몸부림칩니다.
당신과의 거리는 약 3cm.

...삼켜지기 일보 직전.
무기도 없는 당신은 뭘 할 수 있을까요.
이 거리에서 유진을 불러봤자,
당신의 머리가 산성액에 뭉개지는 것이 더 빠를 겁니다.
◈ 지능 판정.

| 기준치: | 90/45/18 |
| 굴림: | 31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하지만, 유상흠.
당신의 신체는 이전과 다르겠지만,
머릿속의 지식만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알파를 재우는 자장가.
문득 그것이 떠올랐어요.

분명, 이런 실패작을 재울 때도 사용할 수 있었죠.

(기억을 되짚어봐요. 지금 자신의 손엔 X 제약회사에서 찾아냈던 그 휴대폰도, 찾아낸 문서도 없지만...내용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 마력 1d3 소모.

...주문을 외우는 당신조차 알지 못하는 음율, 가사, 그리고 소리.
오직 괴물을 위한 자장가를 부르노라면
고요한 목소리는 거대한 총성과 죽어가는 것의 울음에 파묻혀
소리 없는 아우성에 그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란 잠결에도 자장가를 따라 부르는 법.
머나먼 곳에서도 어머니의 부름만은 알아듣는 것.
쿵.
자장가를 들은 생체형 크리쳐는 잠자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중력을 거스르고 부유하던,
외계와 이 별의 끔찍한 혼합물은 바닥을 구르며 잠을 청합니다.
산성액이 자동차 바닥을 뭉개고 지우며 흘러나옵니다.
당신도, 신발 끝을 태우고 싶지 않다면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어요.
죽지는 않았으나 한동안 잠들어 일어나지 않을 존재입니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적어도 당신이 살아가는 4년 후의 세계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테고,
아니, 미처 다다라서도 안 되지만...

그래도 오늘만은 평안하겠죠.
당신이 자동차 밖으로 나서면,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등 뒤의 크리쳐에게, 발사된 탄환이 처박힙니다.
이번에는 금속형이군요.
소리를 듣고 더 몰려들었는지.
순식간에 휘몰아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뺨은 홧홧한 열기에 화상을 입은 양 화끈거립니다.
그래도 그것의 날카로운 금속이 당신을 꿰뚫기 전입니다.
늦지 않았네요, 유진이 뒤를 돌아보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그러면, 바닥에 나뒹구는 생체형을 발견하겠네요.)


이,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혼자서 갑자기 쓰러졌어요? 다친 곳은 없어요? (질문 폭탄)
(어깨를 붙들고 이곳저곳 살피면서 질문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되도 않는 거짓말을 합니다. 이 이유진한텐 적당히 말해주기로 했으니까요) 몰라, 차 안에 얘가 좋아하는 냄새라도 났나봐. 들어오자마자 바로 뻗어버리던데?
덕분에, 봐. (제 손과 팔을 보여줍니다.) 하나도 안다쳤고.

아, 그래도 다행이다... 뭔진 몰라도, 생체형이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하필 내가 다른 쪽에 정신이 팔렸을 때...
아무래도 지능이 있는 것 같다니까....



(지능... 그럴만하지, 잠시 뒤돌아 쳐다봐요.)




(그리곤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여요.)

아, 가서 연고 발라줄게요. (총기가 스쳐 지나가 좀 빨개진 뺨을 봅니다.) 미안해요, 급하게 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저 멀리, 드디어 AOC 작전 본부가 보입니다.

몇 개의 텐트와 바쁘게 오가며 무기의 상태를 확인하는 사람들,
모두 AOC 앰블럼을 달고 있습니다.
그들을 발견하면, 유진은 단호하게 말하겠네요.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이 정의에 오점은 없습니다.
…그렇게 믿는 유진의 눈동자는 의심 한 점 없이 반짝거리겠죠.
적어도 4년 후의 유진보다는, 분명히 신뢰하고 있습니다.


AOC 대원1: 유진!
AOC 대원2: 살아있었구나!
AOC 대원3: 그럴 줄 알았어! 거봐, 내가 리라면 살아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거리가 이렇게 먼데도 용케 알아본 사람들이 반가운 얼굴로 다가옵니다.
AOC 대원4: 다행이에요, 진짜....
4년 후의 당신이 아는 얼굴도 모르는 얼굴도 섞여 있습니다.
누군가는 유진의 생환을 두고 내기를 했는지 동전을 던지고 받기도 합니다.

누구야, 못 돌아온다에 건 사람...!
유진을 둘러싸고 웃고 환영하고 안도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유상흠, 당신은 오롯한 외부인입니다.

(왜... 내가 AOC에 들어왔을때, 내 옆에 있던 크리쳐 이유진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지?)



(저기에 저렇게 같은 대원들을 보고 반가워하는 이유진은...)

(눈 앞에 저런 광경이 펼쳐지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나요. 잠시 쳐다보다가....고개를 휙돌려버려요. 저 곳에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해봅니다)
진실은 과연 어땠을까요.
왜 크리쳐가 됐던 유진을 아무도 입에 담지 않았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한참 복귀를 반기던 사람들이 진정하면,
AOC 대원1: 생존자가 남아있었어?
그제야 누군가 당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습니다.

상흠 씨, 어디 가요...?
당신을 도로 데리고, 유진이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AOC 대원1: …푸하, 최강의 인류라는 녀석이 민간인에게 역으로 구조 당하다니.
AOC 대원3: AOC의 수치야~


AOC 대원4: 아... 그런데, 이를 어쩌지.
Z시의 생존자들은 이미 진작 차량에 탑승하고, X시로 이송했어.
AOC 대원2: 지금 남은 인원은 전투에 투입될 소수 정예뿐이라.....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곤란한 얼굴로 턱을 굅니다.

당신을 배제하고 몇 마디를 나누던 사람들은 곧 대화를 마치고 흩어집니다.

그게... 곧바로 X시 까지는 못 가게 될 것 같습니다.
일단 텐트로 갈까요,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으셨으니까.

(우와, 얼굴에서부터 질색하는 게 드러나요)

저는 여기 같이 있어드리진 못합니다만....
본부 경비 때문에 대원들 중 소수는 여기 남아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처럼 크리처가 텐트를 덮쳐도 문제는 없을 거고요.
전투가 끝나면, X시로 가요.
어쨌건 유진 리는… 최강의 인류로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어쩐지 끼어들 틈이라곤 없는 것 같아서,
4년 후의 당신에겐 복잡한 기분이 들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텐트는 두꺼운 천막을 사용했는지 바깥의 횡횡한 겨울바람도 제법 훌륭하게 차단합니다.
내부에는 의자와 침낭, 몇 가지 식량과 조리 도구 등이 보이네요.
가운데 놓인 이동식 난로에서는 훈훈한 김이 피어올라 퍽 따뜻합니다.
위에 올라간 주전자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고,

유진은 당신에게 담요를 덮어주고, 머그잔에 따뜻한 물을 담아서 건네줍니다.


지금 Z시에선 여기가 가장 안전하니까.... 알죠?

사람이 좀, 까불기도 하고, 성질이 더럽기도 해야지. 욕도 좀 하고.
그렇게 살면 재미없어~
(그래도 물을 주긴 했으니, 한모금 마시긴 합니다.)

자, 그러면...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이별입니다.
저 밖에서 유진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유진은 당신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곤 곧바로 나섭니다.
탄창을 채우고,
무기와 군복의 상태를 점검한 AOC 요원들이
하나, 둘 헬기에 탑승합니다.
투두두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프로펠러가 돌아갑니다.
귀를 때리는 굉음이지만 익숙해서 안정감이 들 지경이네요.
마지막으로 헬기에 타던 유진은, 당신에게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웃는 얼굴입니다.
눈보라가 약해져서 천만다행이에요.


지구의 유일한 희망을 태운 헬기는 금세 하늘 위로 비상해서는,
저 멀리 온점보다 작은 구멍이 됩니다.
....헬기가 큰 바람을 몰고 사라지면,
AOC 작전 본부에는, 당신을 비롯해 1명 남짓의 정찰 담당만 남았습니다.
임시로 세운 본부는 여러 개의 텐트가 듬성듬성 배치된 형태입니다.
가장 안쪽의 텐트는 리더의 것인지 AOC의 마크가 커다랗게 찍혀 있습니다.
끄트머리에 헬기와 자동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고요.
정찰 담당 최전선에서 배제된 정찰 담당 요원은...
달랑 한 명.
신입 티가 풀풀 나네요.
당신을 크게 경계하진 않을 겁니다.
그야, 민간인인걸요.
작전본부를 돌아다니거나… 대화를 시도해 보아도 되겠네요.
이 인원으로 위험하진 않은가요, 정말로?
AOC 대원:.... 저기~
춥진 않으십니까?
AOC 대원:담요 더 드리겠습니다.
혼자서 조금 심심했는지, 정찰 담당은 군용 모포를 들고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AOC 대원:아! 아뇨, 아뇨. 그건 아니고.... 문제는 전혀 없습니다, 그럼요. 크리쳐의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은 안전한 곳을 골라서 친 텐트니까요,
저만 혼자 남았다고 걱정하실 필요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
유사시를 대비해서 남은 거고.... 아, 그러면 크래커라도 드십시오. (뚝딱뚝딱 챙겨줍니다.)
저 설원을 어떻게 무사히 건너셨네요, 어휴... 정말 다행이지 뭡니까~ (허허 웃고 있어요.)


AOC 대원:(옆에서 진짜 쓸데없는 얘기를 주절주절 떠들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차암, 심심하시면 이 안에서만 조금 돌아다니셔도 되는데.... 헬기나 차량은 중요한 이동 수단이니 함부로 건드리시면 큰일 납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의 텐트에도 들어가시면 안되구요.
그거 말고는 뭐... 아! 아니면 조금 주무셔도 괜찮은데요.
필요한 거 있으시면 불러주십시오, 간이 매트리스라도 펼쳐드리겠습니다.

AOC 대원:지키고 서있어도 아무 일 없을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여기는 저 혼자니까.... 다시 앞에 보초를 서러 가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본부에서 너무 멀어지진 마시고요. 그럼.
한참을 당신 옆에서 떠들던 이 대원은,
거수경례를 한 후에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자유네요.
가장 안쪽의 텐트라는건, 아무래도 저거겠죠.
AOC 마크가 크게 새겨진... 저 텐트.

사람이 부족해서인지, 저기를 지키고 서있는 정찰 담당도 없습니다.

리더의 공간이자 회의실로 사용되는 곳이기 때문에,

원래는 외부인인 당신에겐 접근을 불허할 테지만…
운이 좋게도, 보는 눈은 아무도 없네요.
한 번 뒤져나 볼까.
텐트 안에 들어가면 별다른 건 없습니다.
당신이 있던 텐트의 내부와 비슷한 구조네요.
회의 시에 사용한 건지,
화이트보드에는 [지도]와 몇 장의 [보고서],
[휘갈긴 메모]가 남아있습니다.

아무래도, 임시 텐트이니 그랬을까요. 인원도 이렇게나 없고 말이죠.
아마, 생존자를 이송하고는 여기에 남을 계획이 없었을 겁니다.
변종, 즉...
생체형 크리쳐의 등장으로 난항을 겪지 않았다면 말이죠.

생체형 크리쳐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4년 전 정보이니 당신이 아는 것보다 낙후되었습니다.
생체형 크리쳐의 발생 원인이 인간의 시체를 섭취한 것으로 예상된다거나,
A시 근처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거나......
아무것도 모르고 이런 정보들을 곧이곧대로 믿던 때가 있었죠.
이젠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요?


〈생존자의 진술을 대조해 본 결과, Z시에 출현한 생체형 크리쳐 α는 한 번 본 상대의 외형을 복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측. 각별히 주의 요망.〉
뭐… 이것도 별거 없네요.
외형 복제가 가능한 크리쳐, 이것도 당신은 이미 만나본 적이 있으니까요.







쪽지에는 몇 개의 단어가 보이지만,
필기체에다, 원체 휘갈긴 탓에 제대로 읽기 어렵습니다.
◈ 모국어 판정.

| 기준치: | 90/45/18 |
| 굴림: | 59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니까....
유진 리의 대체 인력, 버클리, 유리, 킴.......
아무래도 유진의 실종으로 인한 부재를 채우기 위한 후보들의 이름이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무사히 복귀한 지금, 후보 목록은 필요 없게 되었네요.

회의를 하고, 공들여 후보를 정할 필요가 없었겠네요.
오늘 Z시의 작전은 원래대로 진행하겠죠, 유진을 선두로.


Z시의 지도입니다.
외곽에 이곳, AOC 작전 본부가 표시되어 있습니다.
광장, 병원, 백화점에 각각 스티커가 붙어 있네요.
1차 전투 예상 지역일까요?
텐트를 얼추 돌아봤을 때...
지직, 직. 지지지...... 지직.......
텐트 안에 세워둔 무전기로부터,
거친 기계음이 흘러나옵니다.
잡음 섞인 소리가 텐트 안에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크리쳐 발생 사...으로부터 403......니다. 안심...시오, 국민.......」
... 그런 알량한 정부의 방송이 아니라,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이 단어가 무슨 뜻인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5월이라니, 봄 같은 건 기억나지 않아요.
메이데이,
그런 구조신호가 존재한단 사실조차,
어쩌면 발음조차 생소합니다.
그야 당연하죠.
당신과 유진은 언제나 인류 최강이었는걸요.
바짝 마른 코끝에서 혈향이 느껴지고,
그곳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본능이 치밉니다.
안온한 본부 한복판에 안주했다간 유진이 다양한 사인 중 하나로 죽어버리고 말 테니,
욕구대로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 그런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자리에서 일어나요.
이상하다. 유진은 분명히 살아 돌아올 텐데.
4년 후를 살다 온 당신이 그 증거일 텐데도.

(비록 그게 누군갈 지켜야한다는 방향으로 생겨난 적은 없었지만... 뭐, 그게 문젠가요? 애초에...) ...냄새가 너무 신경쓰여서 말이지. (비릿한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면, 어쩐지. 이유진이 죽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집니다.)
하하, (한 손으로 머리를 붙잡은 상태로 히죽 웃어요.) 내가 못보는 곳에서 죽지말라고... 기껏 찾아냈는데... 그러면 안되잖아? (곧바로 무기를 찾아봐요.)
사방에 눈이 쌓여 질리도록 하얗습니다.
이곳은 도시 외곽, 아득하게 휘몰아치는 흰 눈보라 너머로 저 멀리 도시의 노을이 지고 있습니다.
드문드문 땅거미가 잠식한 풍경은 어쩐지 위태롭고 불안합니다.
「여...기는 광장, 광......이다. 생체...... α가 출몰,」
「지원 요...... 아악!」
비명과 함께 무전이 끊깁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나이프를 챙겨듭니다.
문득 상흠은, 자신의 숨이 굉장히 거칠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감정은 무엇 때문일까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불안한가요.
그러니까, 여긴 너무 춥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이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아, 맞습니다.......

라고,
어떤 사명감을 느꼈는지도(어쩌면 말해버렸을지도!) 몰라요.
내가 못 보는 곳에서 죽지 말라고.
헬기가 좋은가요, 그게 아니면 자동차가 좋은가요.
생각도 하기 전에, 당신은 둘 중 하나에 올라탑니다.
헬기와 자동차 운전쯤이야 AOC 훈련 튜토리얼 항목인걸요.
진작 때웠죠, 그리운 기분이 드네요.
시동이 이미 걸려있는 상태인 것은, 그야 유사시에 언제든 출발하기 위해서.


이미 질리게 운전해 본 것들이기 때문에 판정은 생략합니다.
단 한 사람을 태운 헬기가 상공으로 날아오릅니다.
목표 지점은 Z시의 광장.
창 아래로 펼쳐진 설원은 눈이 시리도록 희디희지만,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닙니다.
유진의 안위가 이토록 불안하긴 처음입니다.
당신이 떠난 지 오래된 동네지만, 지도의 구조는 이미 머릿속에 저장됐습니다.
능숙하게 광장으로 핸들을 당깁니다.
광장 근처 건물, 백화점의 옥상에는 헬기 주차장이 있었죠.
거대한 프로펠러가 멈추는 진동이 온몸을 울립니다.
문이 열리면, 따가운 겨울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복잡한 머릿속이 한결 식는 것 같기도 해요.
저 아래, 광장의 점처럼 보이는 사람 중......
◈ 관찰력 판정.

| 기준치: | 75/37/15 |
| 굴림: | 73 |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단박에 찾아냅니다, 유진을요.
똑같은 AOC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위에 무수히 쓰러진 가운데,
유진은 몇 명과 함께 제법 잘 싸우고 있습니다.
맞은편에 선 생체형 크리쳐는 이리저리 형체를 바꾸며 몇 번이고 죽었다 살아나기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
유진의 생존을 확인해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달리고, 달리고, 달립니다.
옥상을 벗어나
8F 가전제품, 7F 인테리어, 6F 스포츠웨어, 5F 유아동 의류, 4F 남성 의류, 3F 여성 의류, 2F 패션 잡화, 1F 화장품과 향수 코너까지.
엘리베이터조차 작동하지 않아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미친 듯이 뛰어 내려옵니다.
쿵!!!
당신이 착지한 대리석 바닥에 길게 기스가 나고,
끼이익,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신발 자국이 남습니다.
엉망진창으로 구르다시피 착지한 상흠이 백화점의 문을 열면,
바로 앞의 광장이 펼쳐집니다.
불길한 피 냄새와 지독한 악취가 피어오르는 전투의 현장.
그곳에서 가장 먼저 눈이 마주친 건......
「그륵, 그르륵.......」
‘그어그어’하고 우는,
클리셰 SF 세계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리쳐의 눈동자.
짐승처럼 가느다란 동공은 어느 생명체를 합성한 흔적일까요?
그 교활하고 자아를 잃은 결과물이 초승달처럼 가늘게 휘어집니다.
문득 머릿속에 어떤 문장이 스칩니다.
〈생존자의 진술을 대조해본 결과, Z시에 출현한 생체형 크리쳐 α는 한 번 본 상대의 외형을 복사할 수 있는 것으로 추측. 각별히 주의 요망.〉
당신이 눈을 깜빡이면,

순간, 또 다른 유상흠이 그곳에 있습니다.
탄환의 장전을 위해 잠시 시선을 뗐던 유진이 고개를 들면 무척 놀란 얼굴입니다.
AOC의 규칙, 첫 번째.
크리쳐를 보는 순간 망설이지 말고 쏴 갈길 것.
그러나 자신을 구한, 자신이 구한 유상흠입니다.
유진은 한순간 머뭇거렸고......
퍽!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의 형태를 가지고 있던 크리쳐의 얼굴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며 길쭉한 팔을 휘두릅니다.
그 타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맞은 유진의 배가 꿰뚫립니다.
아니, 배가 맞나?
어쩐지 조금 더, 위인 것 같은.......
…..

광장은 또 한 번 피바다를 이룹니다.

크리쳐가 쓰레기를 버리듯 유진을 내팽개치면,
텅 빈 동공을 가진 몸이 광장의 경계에 버려집니다.
상처 부위에선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피가 샘솟습니다.
고작 몇 발자국만 다가가면 유진에게 닿을 거리입니다.
최강의 인류라기엔 형편없는 저 꼴....

◈ 지능 판정.

| 기준치: | 90/45/18 |
| 굴림: | 92 |
| 판정결과: | 실패 |
아, 그래요.
이때의 유진은, 당신을 모르죠.
당신이 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할 리가 없었다는 걸 몰랐던 거예요.
당신이 유진에게 다가가면,

최강의 인류지만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이가
밭은 숨을 몰아쉽니다.
가물거리는 시선, 붉게 물든 방탄조끼, 멈추지 않는 피는 바닥마저 같은 색으로 적십니다.
죽음이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그는 최강의 크리쳐가 아니에요.
이대로 죽으면 되살아나지 못할 겁니다.
전투도 채 끝나지 않았는데,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어요.
유진의 어물거리는 입술이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움직입니다.


도망가.
유진의 죽음을 목전에 둔 유상흠, 이성 판정(1/1D5).

| 기준치: | 69/34/13 |
| 굴림: | 70 |
| 판정결과: | 실패 |


그는 천천히 팔을 뻗어 당신을 붙잡았다가,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더는 말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너덜너덜한 머리는 축 늘어지며,
당신의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엎어집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일이 돌아갈 줄은 몰랐지만... 진작 그냥 내 말이나 믿고 도망쳤으면 됐잖아... (유진의 몸이 완전히 늘어지면, 그냥 그 옆에 앉아요.)

그때,
당신이 곁에 앉아서 중얼거릴 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최강의 인류! 유진 리의 ‘핵’이 완전히 박살 난 그 순간.
긴 이명이 들리고,
째깍,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째깍,
"도망가,"
째깍,
단말마 같은 그 당부와 함께,
째깍,
눈 앞이 핑 돌며......
딸깍.
불 끈 거 누구야?!
당신의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상흠의 눈이 떠집니다.
믿기지 않게도 울음이 터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 건 눈물이 아니라......
시계입니다.
금속 재질로 은색을 띠고 있으며
내부에 든 것은 새파랗게 빛나는 점액질과 복잡다단한 태엽들.
크리쳐의 핵.
유상흠이 이 이야기의 시작에서 파괴했던 바로 그것.
그래요, 4년 전 그날, 유진 리는 Z시 탈환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상급으로 각성한 생체형 크리쳐 α와 고전,
그럴싸하게 민간인을 흉내 낸 접근 방식에 넘어가 늑골이 박살 나고...

심장의 2/3를 잃는 치명타를 입습니다.
그러나 유진은 분명히 4년 후에도 살아있습니다.
4년 후를 살다 온 당신, 유상흠이 그 증거입니다.
당신이 잡아챈 '핵'은 새파랗게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아직 최강의 크리쳐가 되지 못한,
단 한 번의 삶과 죽음만을 부여받은 유진이 어떻게 이 일을 겪고도 살아있던 걸까요?
살아남은 유진 리는, 어째서 C.V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체가 됐을까요?
우연이라고 생각했나요?
이 클리셰 SF 세계관에 단순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진 리가 C.V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체여야 했던 이유,
유상흠이 유진 리의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이유.
이날의 유상흠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진이 크리쳐의 핵을 주입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알파(α)라는 것을.
…
상흠의 손에는 크리쳐의 핵이 놓여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려 산산이 조각 난 크리쳐의 살점과 부품을 몽땅 끌어모을 정도로 강력한 재생력을 지닌 핵!
사지가 멀쩡한 유진의 신체를 수복하고 되살리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겁니다.
자, 봐요.
당신의 발치에 엎드러진 이 목숨을.
죽어가고 있으나 아직 삶을 연명하고 있는...
최강의 인류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너무도 처참한 이 모양새를.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빈 구멍은 딱 적당한 자리를 내놓고 있습니다. \
핵을 꽂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유진 리는 살아날 겁니다.
죽지 않는 신체를 얻어,
저편의 괴물을 물리치고 동료들을 구해내겠죠.
모두 입 모아 그를 칭송하길,
안전지대의 최전방을 수호하는 인류의 영웅,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강의 인류.
이 정의에 오점은 없습니다.
유진 리의 소생은 C.V 실험의 완성을 이루는 열쇠가 되는 장면.
그야말로 클라이막스입니다.
멸망하는 세계에서 당신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창조할, 유일한 연출가예요.
주연은 오직 유진과 상흠, 두 사람입니다.
자, 유일한 당신, 어서 선택을!

(그래도 지금까지 온갖 혼은 다나도, 욕을 들어먹은 적은 없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너 살린다고 뛰어왔다고... 아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이런 말 해도 못듣겠지.
(제 손에 들린 핵을 잠시 쳐다봐요. 그리고 한숨을 작게 내쉽니다. 이래서야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하나 뿐이지않나.) ......좋게 생각해. 넌 원래 죽을 목숨이였는데 덕분에 몇년이고 더 오래 살게 된거고.

이것도...윈윈이잖아. 안그래?

텅 빈 자리에 핵을 쑤셔 넣으면,
심장의 잔해를 가르고 이 세계를 점령한 괴물의 중심이 뿌리를 내립니다.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째깍,
익숙한 시계의 바늘 소리가 들립니다.
째깍, 째깍, 깜빡.
카운트다운처럼 순식간에 영점을 향해 달려가던 시간은,
잠깐.
무언가 이상한 의태어가 섞이지 않았나요?
깜빡?

눈을 뜬 유진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상흠은 근거 모를 하나의 확신을 얻습니다.

유진은...... 아니, 우리의 존재는.
인류의 멸망을 저지할,
기계 장치의 신데우스 엑스 마키나
라고.
기계로 구성된 심장이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하면,
유진 리는 급속도로 회복합니다.
터졌던 내장이 복구되고,
찢어졌던 근육이 달라붙고,
구멍이 난 피부는 아물기 시작합니다.
핵은 흔적조차 사라져,
온전히 그의 심장이 되고
이제 눈에 보이는 증거라곤 무엇 하나 남지 않았는데도......
카운트다운은 왜 끊이지 않죠?
긴 이명이 들리고,
5,
심장이 쿵쾅거리더니,
4,


3,
마지막 목소리가 멀어지고,
2,
눈 앞이 핑 돌며.... ....
1.


정신을 차리면,
다시 싸라기눈이 흩날리는 음울한 검은 숲으로 돌아옵니다.
이파리를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앙상한 나무 위로, 흰 눈이 소복하게 쌓였습니다.
설원이라고 불러도 모자람 없는 넓은 공터.
당신은 새하얗게 언 바닥에 주저앉아 있습니다.

유진이 놀란 얼굴로 당신을 살핍니다.
아, 당신이 아는 그 얼굴이에요.
끝이라기엔 허무하게도, 주위에는 52개의 부품이 흩어져 있습니다.
무엇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죠, 새로운 크리쳐의 핵이니까요.

직접 손에 대자마자 가속하더니 폭발했어....
상흠 씨도 휘말려서....
한동안 소생이 늦어져서... 아,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유진의 속눈섭 끝에는 눈송이가 매달렸습니다.
걱정일지도 모르겠네요.

(꿈은 아니겠죠? 확인 차, 일어나자마자 유진의 볼을 꼬집어요.)

아파요, 뭐야, 일어나자마자?!
크리쳐가 사람을 꼬집으면 안된다는 법도 몰라요? (그런 법 없음)




오히려 무서울 지경인데, 이제.
(슬쩍 거리를 벌립니다.)

이거 한동안은 너한테 별 말도 안 걸정도로... 심각한 질문이니까.
(그런데 뭐, 대충 저 반응들로부터...전해져 오는 안도감들이 있습니다.)


...4년 뒤네. (완전 확신하고선, 뒤로 엎어져요.)

..... ..... 상흠 씨? 유상흠? (발등으로 다리를 한 번 툭 건드립니다. 죽었나 살았나 쳐보는 것처럼.)
괜찮은 거 맞죠... ...?


어떡하냐, 이거...


현미경 속의 시간은 정방향으로 흐르고,
사건은 순리대로 이루어집니다.
상흠의 선택으로 유진은 핵을 이식받아 부활,
4년 전의 사건에서 몇 번이고 죽고 되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첫 생체형 크리쳐 α를 물리쳤습니다.
당신, 유상흠은 원래의 시간 선으로 복귀 후...
기절했죠.
눈을 뜨고 나면, 다시 4년 전의 '원래' 유상흠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저 당신의 과거가 올바른 자리에 있을 뿐이겠어요.
그러므로 4년 전의 그 이유진은, 자신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언젠가는 과거의 그 일을, 기억해주길 기다렸을지도 모릅니다만.
동료들의 증언과 CCTV의 확보,
신체검사의 수치 이상으로 첫 번째 C.V 프로젝트의 대상자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모든 기억은 말소되었으니......
다 지난 일이 되어버렸네요.
이 새로운 크리쳐를 물리치기 위해선 핵을 파괴하는 것에 그쳐선 안 됩니다.
그 핵이 가속할 수 있도록 같은 알파의 접촉이 필요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아니, AOC에 희생당한 실험체들만이 할 수 있는......
물론, 당신의 파트너는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유상흠의 등 뒤를 지키고,
때아닌 자장가를 부르면서까지도.
크리쳐는 진화하고, 외계의 위험은 끊임없습니다.
인류는 결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용하고, 해치고, 분열하죠.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괜찮습니다.
함께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어요.
우리는 존재 자체로 세계를 위한 최강의 클리셰니까.
세계는 아마, 우리를 이렇게 부를 겁니다.
.
.
.
END 2. 최강의 클리셰, 데우스 엑스 마키나

사선에 기운 얼굴은 잠자코 눈을 감고 있습니다.
상흠이 오래도록 보아온 그 얼굴입니다.
그러나 압니다.
근 1년간의 일과는 달리...
이대로 둔다면 유진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지금의 그는 아직 '인류'였으니까.
피에 젖은 뺨은 붉고,
축축하며,
비린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모든 걸 알면서,
내막을 알면서도....
유진에게 또 다시 '그런 일'을 겪게 할 수는 없었어요.
당신은, 때론 어떤 죽음이 삶보다 명예롭다는 진리를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
그러지 않았습니다.
정의가 될 수 없는 오점을 도저히 찍을 수 없었습니다.
광장. 전투가 벌어지는 치열한 접점 속에서도,
두 사람의 시간은 무척 천천히 흐릅니다.
찰나같은 억겁,
억겁 같은 찰나가 지난 끝에....
결국, 유진 리의 숨이 멎습니다.
최강의 인류였던 어떤 영웅은, 촤강의 크리쳐가 되지 못하고,
피로 물든 전장에서 완벽한 마지막을 맞습니다.
누구나 예상한, 그러나 모두가 슬피 울 죽음입니다.
클리셰라는 건 사랑받는 법이잖아요.
...... 콰직,
무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납니다.
아니, 크리쳐가 날뛰며 광장의 이곳저곳을 부수는 소리입니다.
이미 AOC 대원들은 죽여도 죽여도 재생하는 알파,
핵의 위치를 찾지 못한 생체형 크리쳐에게 학살당하기 직전입니다.
살아남은 이의 수가 이미 죽은 이보다 적고,
그나마도 간신히 숨만 붙어 있을 뿐입니다.
생체형 크리쳐가 당신을 발견하고 다가옵니다.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일렁이던 외피는,
채 열 발자국을 못 남긴 시점에선....
유진의 시체를 뒤집어 쓴 것처럼 그리운 얼굴입니다.

주문을 외우는 당신조차 알지 못하는 음율, 가사, 그리고 소리.
오직 괴물을 위한 자장가를 부르노라면 고요한 목소리는 죽음이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광장에 멀리멀리 퍼져 나갑니다.
아이들이란 자장가를 따라 눈을 감는 법.
머나먼 곳에서도 어머니의 부름에 돌아보는 것.
쿵.
자장가를 들은 생체형 크리쳐는 잠자코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중력을 거스르고 부유하던,
외계와 이 별의 끔찍한 혼합물은 아스팔트 도로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산성액이 검은 땅 위에 그어진 흰 선을 뭉개고 지우며 흘러나옵니다.
당신이 한발 물러선다면,
툭.
발치에 익숙한 것이 걸립니다.
대 크리쳐용 살상 무기.
.... 이젠 유진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4년 전의 이들은 크리쳐의 약점을 모르는 모양이지만,
수도 없이 상대해온 상흠, 당신이라면 어디를 노려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외형을 복제하는 타입이라면, 눈이잖아요.
눈에 핵이 있습니다.
물론, 이리저리 피해 다니고,
파괴된 신체도 금세 복구하는 상급 크리쳐의 머리통을 박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잠들어있지만 않다면 말이죠.
과녁을 겨냥합니다.
그리고 총구를 당깁니다.
쾅!
익숙한 파열음과 함께, 크리쳐는 영원한 잠에 빠져듭니다.
너덜너덜한 머리는 축 늘어지며 광장의 블록을 더럽힙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도,
유진은 여전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 반동이 너무 거셌던지 방아쇠에 걸었던 손가락이며,
개머리판을 기댔던 어깨가 미친듯이 욱신거리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부러진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것이 마지막 감각이었습니다.
.
.
.
폐부에서부터 강한 압력이 치솟고,
이내 거센 기침 소리와 함께 어떤 덩어리가 목구멍을 열고 왈칵 쏟아집니다.
그와 동시에, 유상흠은 눈밭에서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흰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빛의 입자들.
심장은 여전히 정신 없이 쿵쾅쿵쾅 날뛰고.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봐도, 옴짝달싹하지 않습니다.
그제야 당신은 깨닫습니다.
.......여기, 설원이 아닙니다.
“심...은 어떻지?”
“C.V ......ml 투...했습...다. ......분...과. 이... 없음.”
“투여량 ......까요?”
“......마다 ... 상태 확...해.”
오한이 듭니다.
눈보다 더 차갑고 소름 돋는 액체가 주사기의 바늘에서 쏟아져 혈관으로 스밉니다.
들리는 목소리는 드문드문 끊기지만, 이해할 수 있어요.
자신이 새로이 ‘최강의 크리쳐’라고 불릴 사람이라는 것을요.
당신의 등장은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민간인인 당신이 어떻게 생체형 크리쳐 α를 파괴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죠.
AOC 정예 요원, 최강의 인류가 절반 이상 살해된 가운데 태연하게 살아남은 단 하나의 기적.
AOC 상부에서 당신을 첫 실험체로 고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
가장 가능성이 큰 인물이었으니까요.
당신은 C.V의 첫 실험체입니다.
이전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갑니다.
유진과 처음 만난 설원,
그 정의의 구성성분이 되고 싶던 어린 날의 바람,
AOC입단 후 유진이 크리쳐였단 거짓된 사실을 접하고 받았던 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트너로서 지켜본 소생과 죽음,
그리고 함께 걷던 나날.
유상흠, 당신은 전부 기억합니다.
당신의 손을 내려다보세요.
이제는 유진 리의 자리를 꿰찬 새로운 괴물의 손을.
당신은, 괴물이 되었습니다. 이성 판정(1/1D5)
“심박 급격하게 상승합니다!”
“투여 중단해! 진정제 준비됐나?!”
“대기 중입니다!”
.
.
.
그와 동시에 유상흠은 눈을 뜹니다.
모든 것이 얼어붙을 듯한 겨울날의 추위 속, 회색 하늘 위로 어지럽게 흩날리는 눈송이들,
어깨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끔찍한 비린내에 머리가 아픕니다.
불쾌한 기분에 팔이나 다리를 움직여본다면,
여기저기 끈적하게 말라붙은 피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진 머리카락은 핏물에 젖어 축축합니다.
몸에 꼭 맞는 검은 군복이 지독하게 무겁습니다.
생명줄처럼 쥐고 있던 총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입니다.
그보다, 당신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차가운 웅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발생한 참혹한 상황에, 이성 판정(0/1D2)

| 기준치: | 68/34/13 |
| 굴림: | 30 |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오래된 라디오의 잡음 섞인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오늘은 크리쳐 발생 사...으로부터 866......니다. 안심...시오, 국민.......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합니다.
10m쯤 떨어진 곳에서, 불 앞에 앉은 낯선사람이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먹고 있습니다.
라디오 소리는 저곳에서 들리는 것 같네요.
등을 돌린 사람은 당신이 바로 뒤에 왔음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라디오 소리에 푹 빠져 있습니다.
여전히 최강의 인류를 운운하는 걸 보니, 분명 시답지 않은 가십 뉴스겠지만요.
문득 유상흠은,
자신의 숨이 굉장히 거칠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이 사람에게 왔나요?
그러니까, 여긴 너무 춥고, 배가 고프고,
그래서,
식량과 온기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아, 맞습니다......................

라고, 생각해버렸는지도(어쩌면 말해버리기까지 했는지도!) 몰라요.
부추기듯 두드리는 심장 고동 소리를,
당신은 결국 참지 못하고 낯선 사람에게 달려듭니다.
아니, 달려들었을 겁니다.
분명 달려들지 않았나요?
작동 방식도 알지 못하는 총은 내던지고,
무기가 될 만한 무언가를 잡는다거
대충, 그랬던 것 같은데.......
“―――!”
굉음이 울리고, 허수아비가 쓰러지는 것처럼 무기력한 퍽! 소리와 함께
유상흠의 세상이 한 번 크게 뒤집히더니,
어느덧 낯선 사람은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흩날리는 옅은 밀색 머리카락, 형형한 빛을 감춘 녹색 눈동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부는 바람과 내리는 눈,
문득, 유상흠은 가슴이 허합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이를테면.....

END 3. 클리셰 파괴를 위한 클리셰, 유상흠.
